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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간

대문호 톨스토이, 명성에 가려진 그의 생애

by 긍정의 구슬 2023. 6. 7.

 

톨스토이
톨스토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본명이다. 그는 182899일 러시아의 남부도시 야스야나 폴리야나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는 백작의 신분으로 정략결혼을 선택한다. 그 대상은 톨스토이의 모친 마리아 볼콘스키였다. 마리아는 부유한 귀족의 외동딸로 그녀의 지참금은 야스야나 폴리야나라고 불리는 거대한 영지였다. 그곳은 이후 톨스토이의 고향이자 영원한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양친 모두 어린 시절 돌아가시고 남겨진 다섯 남매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자이면서 동시에 쾌락을 추구했다. 특히 성욕과 도박의 유혹앞에 무방비였고 처절한 환멸과 자괴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이런 모순때문에 그의 사고방식은 말년까지 자신을 괴롭힌 주요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그의 행적은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1851, 톨스토이는 형의 뒤를 따라 입대하여 당시 귀족들처럼 유년 군사학교나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포병 하사관부터 시작하여 공을 세워 현지 임관한다. 복무 중 틈틈이 그의 성장기가 반영된 반자전적인 소설을 썼는데 유년 시대(1852), 소년 시대(1854), 청년 시대(1857)가 그것이다.

 이때쯤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고 전역 신청을 했는데 크림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전역이 거부당했다. 여러 전투에 참전한 톨스토이는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공을 인정받아 성 게오르기 훈장을 받고 중위로 진급한다. 이때부터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1855년에는 세바스토폴 전투에 관한 짧은 글들을 잡지에 실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세바스토폴 이야기이다.

 이런 군 경험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잔혹한 체험 때문에 톨스토이는 평화주의로 기울게 된다. 톨스토이는 1855년 군에서 제대하고 1857년부터 1861년까지 서유럽을 두 차례 여행했다. 그곳에서 교육 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톨스토이는 영지로 돌아와 농민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열고 신문 야스나야 폴랴나를 발간해서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한다.

 

 1862년에 34세가 된 톨스토이는 지인의 딸이었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이슬레네프와 결혼한다. 소피아는 남편을 대신해 영지를 관리했고 원고를 정리하는등 내조에 힘을 썼다. 소피아는 귀엽고 발랄해서 톨스토이는 그녀를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 이상이 달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톨스토이가 농민을 위하고 원고료를 받지 않겠다는등 경제적인 문제에서 특히 마찰이 심했다. 현실주의자인 부인의 입장에서 이런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톨스토이는 1869년 필생의 역작 <전쟁과 평화>를 완성시켰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소재로 한 이 역사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실제로 영웅은 역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역사관을 내세우며 '위대한 사람'을 중요시하는 역사관을 강력히 부정해 뭇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번 현장을 답사하고 생존자를 만나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이 위대한 소설을 탄생시킨 셈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두 번째 걸작 안나 카레니나1878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남녀의 불륜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깊이가 있다. 소설속으로 들어가보면 1870년대의 귀족계급과 러시아의 사회문제,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특히 간통에 대한 상류계급의 위선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종교적 신념을 강조하며 의미를 부여한 점에서 점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작품은 2007년 노턴출판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선정되었다.

 1880년대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문학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문학보다 종교에 심취하면서 이를 싫어하던 소피아와 자녀의 갈등은 커져갔다. 이 즈음 톨스토이의 추종자 체르트코프가 찾아와 대변인으로 자처하며 소피아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1891년 톨스토이는 청빈의 삶을 실천하기위해 모든 저서의 판권을 포기하려 했지만 가족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말년에 발표된 예술이란 무엇인가》 《부활을 발표하며 필력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즈음 러시아정교에서 파문당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1908년 그의 80회 생일에는 전세계에서 축하인사가 답지할정도로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내와의 갈등은 극도로 커져 1910년 모든 저서의 판권을 막내딸 알렉산드라에게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어느날 가출을 결심한다. 같이 살고 있던 주치의와 함께 집을 나와 기차를 탔다. 며칠 후 톨스토이는 여행 중 감기에 걸리게 되었고 폐렴으로 진행되었다. 기차가 작은 간이역 아스타포보에 도착했을때 톨스토이의 증세는 악화되었다.  급한대로 역장의 집에 누운 톨스토이는 가뿐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운명의 시간을 맞이했다.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소피아와 가족들이 달려왔지만 톨스토이의 시신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는 생전에 많은 추억이 깃든 영지 야스야나 폴리야나의 작은 언덕에 묻혔다.

 

 러시아문학에서 톨스토이를 빼놓고 이야기할수없을 정도로 톨스토이가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톨스토이의 문학은 사실주의 문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여준 사실성은 높이 평가된다.나폴레옹의 러시아침공을 소재로 한 전쟁과 평화는 작품전체를 관통하는 사실적 묘사는 그의 역사관이 드러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자신의 열정을 추구하다가 사회의 편견으로 질식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안나의 상대역 레빈은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이 반영된 인물이다.

 톨스토이는 장편으로 유명하지만 단편역시 그에 못지않다. 그의 단편중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이반같은 이야기는 계몽적 성격의 우화를 담고 있다. 톨스토이는 당시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들을 위해 작품을 구상했다. 톨스토이의 또다른 역작 인생독본은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지혜의 글을 담고 있다. 특히 신에 대한 그의 종교관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그에게 좋은 영향을 준 많은 위인들의 글은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톨스토이는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로서, 그의 두 가지 장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는 세기를 넘어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통상 이제까지 쓰여진 소설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쟁과 평화는 사실상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위해 이런 형식을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톨스토이의 단편작 중에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보통 중편 소설의 가장 훌륭한 예로 분류된다.

톨스토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해석은 그가 위대한 문학가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러시아농민에 대한 피지배계층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비폭력주의로 연결되어 간디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의식에 대한 지극히 작은 변화들도 관찰하며 신체의 미미한 움직임들도 기록하는 그의 섬세한 집필을 높이 평가했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과 행동을 다루는데 능숙한 그의 필력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얻은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