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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간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찌

by 긍정의 구슬 2023. 6. 28.

 

페스탈로찌

 

1.페스탈로찌의 생애

1746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취리히대학교에 재학중 애국단체에 가입하여 사회운동에 가담했고 노이호프에 농민학교를 세웠으나 실패후 사색과 저술로 보냈다. 1798년 프랑스혁명의 여파가 스위스로 닥쳐 슈탄스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봤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20세기 신교육의 기초를 열었다. 헤르바르트 몬테소리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평생을 교육실천가로 살면서 지덕체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의 교육원리를 수용 및 비판하여 이론적으로 구체화한 사람이 바로 오늘날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르바르트이다.

페스탈로찌의 핵심교육이론중 하나는 나이에 관계없이 존중을 통한 인격의 대우와 도야이다. 기원전부터 내려온 강제교육을 통한 복종에 경종을 울렸다. 중세시절부터 폭력을 통한 교육과 훈육을 지양했던 당시에 체계적인 아동교윢화 훈육방식을 제시한 공로가 크다.

 

2. 페스탈로찌의 사상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가정의 단란함과 화목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라고 여겼다. 자녀를 보는 즐거움이 사람의 가장 거룩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없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었던 페스탈로찌는 사람이 가난해야 감동도 잘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사람이 나라에 충성도하고 사회봉사도 할 수 있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도 건강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요새를 지키듯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귀한 지혜와 많은 재산이 있을지라도 순수한 인격이 없다면 그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가난한 집에 살지라도 교육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순수하고 기품있는 생활을 영위할 것이다. 페스탈로찌는 고난과 눈물이 자신을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보석과 많은 돈은 이것을 결코 이루어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 페스탈로찌에 대한 평가

81세를 일기로 사망할때가지 교육사상가로 활동하며 은자의 황혼》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어린이가 작은 어른이 아니고 고유의 세계가 있는 인격체로 생각했다. 어린이의 개성을 무시하던 당시 시대 사람들에게 작은 경종을 울렸다. 어린이를 가르칠 때 교과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널리 알려져 프로이센의 군주가 직접 찾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노이후프에서는 빈민의 구원자, 민중의 목자, 슈탄츠에서는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페스탈로지는 중세의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어린이에 대한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고 인격수양을 강조했다. 지금은 흔한 게 평등사상이고 인권을 강조하지만 그 시대에 어린이와 여자는 그저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페스탈로찌는 보기드문 선각자였음이 증명된다. 그 바탕에는 기독교의 사랑 정신과 박애 사상,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깔려있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페스탈로찌는 일찍이 주장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헤르바르트가 교육이론을 정립했으며 그 기초 덕분에 우리가 평등한 인권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페스탈로찌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억압과 훈육속에서 숨조차 쉴 수 없는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교육현장은 어수선하고 불평등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근대교육의 기초를 마련한 페스탈로찌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나은 인성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