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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간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by 긍정의 구슬 2023. 6. 23.

 

이순신

 

1. 이순신의 생애

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1545년 한성부 건천동에서 이정과 변씨와의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157630세가 넘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해 관직으로 나섰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해서 왜적에 대비해 군함을 건조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수사 원균의 요청을 받아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옥포해전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적진포에서도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조선수군의 사기가 올라갔다.

사천해전에서는 처음으로 거북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순신에게 잇따라 패배한 왜군은 모든 힘을 모아 전라도로 집결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한산도로 유인해 50여척의 왜군을 물리쳤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한산대첩이다.

1593년 한산도로 본영을 옮기고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당시 당파싸움으로 분당된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전과를 놓고 논의가 분분했다. 조정의 출정명령에 이순신은 적의 계략으로 생각해 거부했고 결국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혹독한 문초 끝에 권율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에게 대패하여 부하들과 함께 전사했다. 이를 계기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남아있는 전선을 모아 조선수군을 재건했다. 진도 울돌목에서 13척의 배로 130척의 왜선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명량대첩이다. 이 승리로 인해 조선수군은 다시 제해권을 차지했으며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을수 있었다.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순신은 명나라 제독 진린과 함께 노량에서 500여척의 왜군을 맞아 200여척의 적선을 불태우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적의 유탄을 맞아 전사했다. 그의 죽음을 전해들은 조정에서는 그에게 우의정을 추서했다. 1643년에는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고 영의정으로 추서되었다. 남해의 전적지에도 그의 비석이 세워졌다.

 

 

2. 이순신에 대한 평가

이순신은 시문에도 능하여 시조 및 난중일기를 남겼다. 그의 유품들은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선정되었고 그 이름만으로도 누구나 아는 충신이다. 애국심과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구국의 영웅이며 세종대왕과 함께 한국의 최고 위인으로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영국의 넬슨제독이 해상의 왕이라고 하지만 그는 정부의 모든 지원을 받고 승리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열악한 환경과 백의종군하면서도 승리를 거둔것이니 차원이 다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전적으로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무려 2323승 불패신화의 주인공이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제해권을 장악하여 적의 보급로를 끊음으로써 전쟁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망국으로 치달았던 당시의 전쟁상황을 역전시켜 구국의 선봉이 되었다. 이순신은 극한의 상황속에서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사실상 의심과 질투가 많은 선조에게 철저히 버림받았고 원균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파직당하기도 했다.

피땀으로 일궈놓은 군대가 단 한 번의 전투로 궤멸되고 어머니와 막내 아들을 잇따라 잃는등 인간으로서 고난과 역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왜군을 몰아내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순신은 영웅보다 성웅으로 불리며 바다와 전쟁의 신으로 묘사된다.

생전에 그를 알고 있던 인근 백성이나 군졸 재상들에게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다. 장군의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모두 슬퍼했다고 한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항상 1, 2위를 다투는 진짜 영웅이다. 이순신은 독보적 정직함과 청렴함, 공정성 면에서도 한국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인해 덕수이씨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무반 가문으로 손꼽히게 된다. 무과급제가 무려 267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의 후손들은 이순신의 후예라는 자긍심으로 무반가문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